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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와 교양

동기부여의 법칙 - 필자의 슬기로운 감빵생활

2023년 여름, 대한민국 힙합의 거장들이자, 원탑이라 불리는 빈지노와 이센스가 정규 앨범을 차례로 발매하면서 그동안 죽어있던 국힙은 다시 한번 살아나는 조짐을 보이곤 했다. 아무리 10년이 넘게 지나도 한 커리어 안에서 1대장 자리를 놓치지 않는 이 둘의 모습을 보면서, 필자도 뭔가 삶에 대한 동기부여를 받았던 것 같다. 이들처럼 필자도 글쓴이로서 좀 더 열심히 해야 하지 않을까. 그동안 블로그를 잠시 비운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찾아와 누적 방문 수를 10000이나 돌파해주시는 독자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라도 표현하는 차원으로서 뭐라도 글을 써 올려야 하지 않을까. 

필자는 2023년 상반기를 놀면서 보냈다. 정말 인생에 두번 다시는 오지 않는 기회인 만큼, 장기적 휴가를 마음껏 즐겼다. 1월부터 한국에서 거의 매일 술을 퍼마시면서 1호선부터 9호선까지 다 타보는 경험도 해봤고, 3월엔 오사카랑 교토로 여행을 가서 일본 문화도 즐겼고, 6월엔 발리로 날아가서 동남아 휴양지를 처음 맛보는 시간도 가져봤다. 무려 반년이다 되는 시간이었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정말 짧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뒤도 안 돌아보고 놀았었다. 소중한 인연도 많이 만들었고 기억에 오래 남을 추억도 많이 쌓았다. 필자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반년이 아니었나 싶다.

열심히 놀아서인지 필자는 현재 의대를 다니면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은 상태지만, 뭔가 어떻게든 잘해나갈 자신감이 더더욱 생긴다. Work hard, play hard라는 말처럼 열심히 놀은 만큼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이 굴뚝같다. 필자가 비록 다니는 의대가 도시와는 거리가 뭔 시골에 위치되어 있지만, 뭔가 이젠 막 엄청 놀고 싶다는 마음도 딱히 존재하지 않는다. 이게 보통 차를 운전할 때도 아우디나 포르쉐를 몰고 다니다가 마티즈로 갈아타라 하면 죽어도 못하는 것처럼 필자도 서울, 오사카, 발리 같은 곳에서 놀다가 이런 깡촌 시골에 와보니 그냥 굳이 나가서 놀러 다니고 싶다는 마음이 전혀 생기지가 않는 것 같다. 필자는 현재 의대 1년차로서 나름 신입생인데, 동기들이 주말마다 술 마시러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뭔가 재미가 1도 있을 거 처럼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아무리 재밌어봤자 한국의 수도권 변두리 술집 미만잡이라는 생각에 차라리 그 시간에 영화 하나 틀어놓고, 배달 음식에 맥주 한 캔을 까는 게 훨씬 더 필자 자신에게 유익하고 재밌는 시간이라고 생각이 든다.

물론 이 마인드셋이 4년 내내 지속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당연히 한 2년차 될 때부터 아마 다시 놀고 싶고, 공부에 대한 집중력이 지금보다는 그래도 조금 떨어질 수 있다고 예상이 되는데 그때마다 뉴욕 같은 곳으로 도시 여행 한번씩 싹 갔다 와주면 바로 리셋이다. 필자가 최근 느낀 건데, 이 뉴욕이라는 도시는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는다는 점이다. 뭔가 늘 새로운 거 같다. 눈에 익숙하면서도 이 잠들지 않는 도시는 필자를 일깨워주는 그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일명 인비져블 썸띵. 살면서 비록 3번밖에 안 가봤지만, 정말 최고의 도시인 거 같다. 주변 사람들 모두가 열심히 하고 세계의 중심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닌 도시. 그런 뉴욕을 생각하면 필자 현재 처지가 정말 뭐 같고 현타가 파도처럼 밀려오기만 한다.

글의 어감으로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시피 필자 인생의 최종 목표는 뉴욕이다. 하지만 이 도시는 필자에게 최고의 동기부여면서도 아쉽게도 너무 멀리 느껴지는 목표다. 필자의 현주소는 징역 4년형 - 마치 빠삐용이 된 것처럼 섬에 갇혀서 교도소 같은 이 환경에서 버텨야만 하는 상황이다. 필자가 인생을 살면서 느낀 건 주변 환경이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는 점인데, 현재 환경은 그저 암울할 뿐이다. 에모리 대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별로 생각하지도 않은 이런 환경 이슈를 정작 침체된 곳에 살아보니 뼈저리 느껴지는 부분이다.

필자의 오랜 친구들은 줄곳 얘기하는 게, 필자가 의대를 선택해서 지금 다니는 것만큼 그저 공부에만 집중하라는 말이다. 지극히 동의하는 부분이다. 의대를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공부를 떠나서 의식주를 매일 걱정해야 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필자도 현재 위치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는 점도 잘 인지하고 있긴 하다. 그래서 그냥 열심히 공부만 할 생각이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이라는 드라마를 보면 왠지 모르게 공감이 된다. 그저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하고, 어떻게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면 좋은 결말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가 필자 인생에게도 적용이 될 수 있다는 거에 희망을 한번 걸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희망을 걸어본 만큼, 헛된 희망이 되지 않도록 필자 자신한테 동기부여를 줄 수 있는 원천을 항상 찾고 있다.

동기부여라는 것은 생각보다 심플하다. 주관적이기에 스펙트럼은 넒을 수밖에 없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게 부모님이든 이성이든 자녀든 매일 어떤 사람 얼굴을 보면 그저 하루가 행복해지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매일 밤 맥주 한잔으로 마무리하는 것에 만족해하면서 인생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은 새 하루가 시작하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볼 생각에 흐뭇해하고, 이른 아침인데 벌써부터 늦은 밤에 맥주 한잔 할 생각에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을 가지는 그런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다 본인이 알아서 정하기 나름이다. 말 그대로 만족감과 성취감의 기준은 self-directed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최종 목표를 달성하는 것보다 그 목표까지 가는 과정에서 희열을 느끼는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한다. 희열을 느끼지 못하면 안 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뭔가 이 과정이 엄밀히 따져서 재미가 없거나 마무리 목적이 뚜렷하지 않다면 그 피니쉬 라인을 넘기는 것에 대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결과론적으로 말하자면,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하면 된다. 대표적인 케이스는 연예인 노홍철이다. 예전에 홍철책빵이라고 노홍철 본인이 만든 제과점에서 빵을 주문한 적이 있었는데, 쓰여있던 문구가 기억에 남는다: "하고 싶은 거 하세요." 처음 봤을 때는 그냥 "하고 thㅣㅍ은 거 하 thㅔ요"라고 따라 하면서 피식 웃고 넘겼는데 지금은 그 문구가 정말 와닿는다고 생각한다.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할 때는 굳이 동기부여가 필요 없을 정도로 열정과 원동력이 생긴다.

아까 언급했듯이, 어떠한 동기부여가 생기면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하루를 보내는데 큰 어려움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가장 무서운 것이 동기부여가 없을 때이다. 의미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그냥 매일이 무료하고 흔히 말하는 매너리즘에 빠진 일상을 사는 게 인간에게는 가장 치명적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바라보고 어떤 거를 열망해야만 매일이 늘 새롭고 짜릿할 텐데, 그런 게 없다면 시간을 그냥 갖다 버리는 거랑 큰 차이가 없다. 이러한 일상이 지속되면 발전도 없고, 끝없이 나태해지고, 결말은 항상 나락일 뿐이다.

동기부여가 될만한 취미나 일상의 재미를 찾을 때 단계적으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예를 들어서, 필자는 1순위이자 가장 큰 목표가 뉴욕에서 취직해 사는 것인데, 이건 필자 인생의 마지막 퍼즐 조각일 뿐이지 지금 현재 하루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큰 도움이 될 수가 없다. 그래서 그 밑에 조그마한 동기부여를 주는 소스나 sub-level 요인을 만들어야만 한다. 보통 흔히 취미를 동기부여로 삼는 경우가 제일 많은데 가장 간편하면서도 아무 거나 될 수 있다는 게 메리트이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건 본인이 정한 취미가 매일 동기부여를 주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아침에 딱 일어났을 때, 머릿속에 그 취미가 바로 떠오른다면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그럴 만한 취미가 없다면 어떤 대상이 될 수도 있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건 반려견이나 고양이인데, 사는 데에 있어서 탄력을 더해주고 행복 지수를 높여주는 가장 쉬운 존재들이다. 

필자도 그래서 주어진 환경과 조건 아래서 진정한 동기부여를 찾기 위해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구상에 넣어봤다. 쉽게 말해 쉽지는 않았다. 예전처럼 혼자 감아차기나 프리킥 연습은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조건도 아니었던 게, 지금 사는 곳은 더위가 워낙 심각해서 지루해 죽는 것보다 쪄 죽는 게 훨씬 빠를 정도로 야외 활동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필자의 또 다른 취미였던 포커를 치는 것도 쉽지 않다. 의대여서 그런지 뭔가 포커 그룹을 형성한다는 게 어렵기도 하면서 시선이 의식된다. 그렇다고 해서 주말마다 술을 퍼마시거나 클럽을 가고 싶지는 않다. 굳이 나가서 노는 재미가 없으면 술을 안 마시는 것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엔 어떻게 됐냐? 필자는 헬창이 되는 걸 선택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을 가고, 맘 같아선 하루에 두 번이라도 가고 싶어 지게 필자 자신을 세뇌시켰다. 필자의 태생적인 음식에 대한 귀차니즘 때문에 식단은 제대로 못하지만, 그래도 간헐적 단식을 종종 해가면서 몸 관리를 하기 시작했다. 몸이 좋아야 뭔가 더 자신감도 생기고 삶에 열정이 더 솟아나는 거 같아서 그걸 원동력으로 삼았다. 그리고 유산소 운동을 하면서 체력 관리를 해야 언제든 조기 축구나 픽업 경기를 나갈 때 풀타임을 뛸 수 있기 때문에 그것 또한 필자에게 도움이 되었다.

또 하나는 축구 경기를 챙겨 보는 것인데, 여름은 비시즌이기 때문에 8월 말에 유럽 축구가 다시 개막하기 전까지는 그저 기다려야만 하긴 한다. 더군다나 올해 김민재가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하고, 이강인도 파리 생제르망으로 팀을 옮기는 바람에 챔피언스 리그는 더더욱 기대가 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때까진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서 어떤 걸 보고 있을까 궁리하던 중, 뜬금없이 한국 야구가 생각났다. 한국에 있는 동안 필자의 고향 팀인 한화 이글스 경기를 직관 갔었는데 너무 재밌었던 게 기억에 남아서 최근에 새벽에 한번 일어나 티비를 켰었다.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면서 봤다. 그래서 그 뒤로 매일 일찍 잠들고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경기를 매번 챙겨보는데, 이젠 그게 하루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한화가 십몇년동안 꼴찌만 하다가 올해 갑자기 플레이오프를 진출할 수 있을 정도에 수준을 선보이니 더 챙겨보게만 된다. 새벽에 일어나서 커피나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면서 경기를 보는데 그게 현재 필자의 하루를 지탱해 주는 것이 되었다.

이렇게 필자는 동기부여의 법칙을 준수해 가면서 자기 자신을 개척해 나간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동기부여의 법칙을 필요로 안하는 사람들도 존재하긴 한다. 그냥 하루하루를 일만 하면서 일에 미친, 일만 생각하는 워커홀릭들은 굳이 다른 동기부여 요소가 없어도 순수 일에 대한 열정 덕분에 그거 하나로 먹고 살아가는 경우도 꽤 많다. 그렇게 매일을 달려도 일상에 필요한 건 다 챙기고 삶에 재미까지 챙기는 완벽한 갓생을 사는 사람들인 것이다. 아쉽게도 필자는 그러하지는 못하다. 그래서 필자 같은 사람들은 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멈춰야 느낄 수 있는 일상의 재미를 학업이나 본업 외에서 찾고 그걸 동기부여로 삼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