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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도박으로 흥한 자 도박으로 망한다

酒色雜技. 사람이 멀리 해야 할 3대 요소를 일컫는 사자성어 주색잡기를 뜻한다. 바로 음주, 여색, 도박이다. 

필자는 나름 음주 관리를 잘하는 편이다. 대학생이 된 이후 처음에는 술 마시는 문화가 재밌어서 술자리도 한때 자주 갔었고, 나중엔 혼술도 조절하면서 잘하는 애주가가 되었었다. 그렇게 술주정은 딱히 없는 지극히 무난한 주당으로 대학 생활을 재밌게 하고 있었는데 언제 한번 크게 데인 적이 있었다. 술자리에 얼굴을 너무 자주 비치는 사람이면, 누군가는 그 사람에 대해 뒷담을 깐다는 교훈이었다. 그리고 이 뒷담은 와전돼서 사실과는 무근한 루머로 퍼트려져 한 특정 인물을 죽이는 계기가 된다는 것. 특히 한국인 대학생들 사이에선 더 그렇다. 대부분 입만 가볍고,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진짜 믿었던 사람도 배신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경험이었다. 호의를 베풀면 권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배우게 해준게 바로 술 문화다. 

여자도 포기한 지 오래다. 진짜 처음엔 전생에 나라를 배신했거나 친일파로 활동했나 생각할 정도로 여자 운이 없는가 싶었는데 그 정도가 아니었다. 전생에 최소 어느 한 민족을 학살했거나 임진왜란 때 조총으로 노량 해전에서 충무공 이순신을 쏴 죽인 장본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별에 별 유형의 연인은 다 스쳐 지나가 본듯하다. 연락을 너무 안 해서 거절도 받아보고, 연락을 너무 잘해서 거절도 받아봤다. 심각하게 4차원인 여자도 만나보고, 남자를 돈으로 보는 여자도 만나봤다. 바람피우는 여자도 만나보고, 호구 잡힌 적도 여러 번 있었었다. 이런 게 계속 반복되다 보니까 필자 자신이 문제라고 생각해서 꽤 많은 사람들한테 상담을 받아봤다. 필자가 더럽게 못생기고 연애도 못하고 이상한 인간이어서 이런 일들이 생기나 싶어서 친구들 조언을 새겨들으면서 굉장히 조심스럽게 누구를 만나봤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어찌 됐든 간에 나중에는 의도치 않게 여혐이 어느 정도 의심되는 경지에 이르게 된 것 같다. 예전엔 괜찮은 사람을 보면 설레고 하루가 행복했는데, 이제는 의심부터 하게 되고 "쟤도 싸없새겠지 뭐" 이렇게 생각하고 눈길이 안 가게 됐다. 주변에 커플들을 보면 부럽기만 하고 필자 자신이 너무 한심하기 짝이 없었는데, 이젠 별다른 감정을 못 느끼게 됐다. 

그러는 와중 주색잡기의 3번째 요소인 도박을 접하게 됐다. 도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한국의 전통적인 놀이 고스톱이나 바둑부터 해서 미국 카지노에 즐비한 슬롯머신이나 근처 주유소에서 접할 수 있는 로또 복권까지 종류가 어마어마한데, 필자가 그중에 빠지게 된 건 그 유명한 텍사스 홀덤이다. 흔히 포커라고 불리면서, 요즘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뜨고 있는 카드 게임인데 중독성이 정말 강하다. 포커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친한 형들이 와서 배워보라고 추천했었던 게 기억이 나는데 그때 진짜 가지 말았어야 했다. 그 당시에는 순수하게 형들이랑 친해지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술자리도 멀리하고 여자도 멀리하는 상태에서 안 그래도 외로운데, 형들이 불러주니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새가슴이어서 포커를 칠 때 베팅을 잘 못했다. 좋은 카드가 들어와도 시원시원하게 베팅을 못해서 상대방한테 기회를 주게 되고, 결국 fold를 하게 되는 경우가 수두룩 했었고, 안 좋은 카드로 bluff를 쳐봐도 수를 읽혀서 호되게 당하는 스타일이었다. 뭔가 영화나 미드에서 보는 거랑 느낌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영화 주인공이나 캐릭터가 포커를 잘 치면 정말 간지 나고 그저 따라 해보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는데, 정작 해보니 쉽게 봐서는 안될 게임이라고 생각했다. 계속해서 지는 필자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해서는 돈도 잃고 재미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유튜브에서 포커 영상을 찾아보게 되었고, 프로들이 참가하는 메이저 대회나 채널을 구독해서 열심히 배워나갔다. 보드를 완전히 숙지해서 내 패만 보지 말고 상대의 패도 예상하는 방법, 패가 약해도 탁월한 운영으로 상대를 fold 시키고 판을 따오는 방법, 그리고 좋은 패가 들어오면 상대를 유인시켜서 최대한 많은 돈을 따오는 방법을 터득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 재밌었다. 다른 걸 공부할 땐 때려치우고 포기하고 싶었는데 포커를 공부하는 건 완벽한 타임 킬링이었다. 그리고 방학 때 할 게 없는 와중, 포커는 필자에게 적절한 솔루션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밥만 먹고 바로 포커 영상을 두세 시간씩 챙겨 봤고, 온라인 포커로 연습을 하곤 했었다. 그리고 돈도 벌어서 그 돈으로 최근에 트렌딩하고 있는 가상화폐 Bitcoin과 Ethereum으로 투자하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게임을 하면서 돈까지 번다? 와, 이게 프로게이머들의 마음일까라는 생각으로 방학을 참 알차게 쓴다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도박으로 돈을 벌려고 하는 순간 나락으로 가는 건 순식간이다. 영화 "올인"의 주인공이자 대한민국 포커의 올타임 일인자라고 말해도 손색없는 타짜 차민수 기사가 예전에 인터뷰에서 한 말이 있는데, 도박은 돈을 잃는다 생각하고 재미로만 쳐야 한다는 충고였었다. 필자는 온라인 포커로 돈을 벌게 되니까 그 말이 처음에는 와닿지 않았었다. 조금씩 벌면서 용돈벌이 한다 생각하면 괜찮겠지라고 마음을 먹고 쳤기 때문이었다. 허나 이건 패착이었을 뿐이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게 정말 맞는 게, 나중에는 필자도 점점 발판을 넒혔고 더 많은 돈을 따내고 싶은 마음이 어쩔 수 없이 생겼던 것 같다. 여기에다가 또 "어제 잃었으니 오늘 그 돈을 메꾸자" 이 마인드도 있어서 더더욱 포기를 못하고 계속 얽매혔던 것 같았다. 하지만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성적이 안 나와서 돈을 계속 잃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거의 원점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후회가 엄청 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이걸로 온라인 포커를 그만둬야 한다는 명분은 충분히 생겼다. 당연히 벌은 돈을 잃었다는 점에서 현타가 오고 허공에다 주먹을 날리고만 싶은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원점에서 멈췄다는 게 어디야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락의 본격적인 서막은 최근이었다. 최근 들어서 아는 형들이나 친구들이랑 쳤을 때, 돈을 계속 잃었다. 포커 치는 동안은 돈도 많이 따고, 굉장한 흑자를 내는 순간도 있었지만, 결말은 항상 bad beat로 올인 처맞고 지는 헤픈 엔딩이었다. 가장 최근 판은 highest straight로 리버에 뜬 상대 full house에 졌는데, 이 글에 차마 담을 수 없는 창피한 액수를 잃어서 정말 기분이 소위 말해 주옥같았다. 상대가 그래도 친한 형들이라 그냥 크게 4-star 미슐랭급 식당에서 풀코스로 아침, 점심, 저녁 연속으로 대접했다 생각하려 했는데 뭔가 졌다는 것에 현타가 왔고, 은행 계좌에 정작 돈이 없어 저녁도 못 사 먹는 필자의 처지를 보면서 마음이 착잡했다. 진지하게 나락 갔다는 걸 몸소 체감할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주색잡기 중에서 이 3번째가 가장 역대급으로 위험한 것 같긴 하다. 술은 그냥 조용히 혼자 마시거나 진짜 친한 친구들 몇 명만 골라서 마시면 되는 거고, 여자는 그냥 숨만 쉬고 살아도 안 엮이니까 문제가 안되는데, 포커는 진짜 끊기 어려운 것 같다. 할 수 있는 건 다른 것에 시간을 투자해서 포커 치는 빈도를 줄이는 건데, 최근에는 축구도 못하고  친구들도 코로나 때문에 학교에 없어서 이것마저도 어렵다. 공부에 전념하라는 신의 계시라고 받아들이고 공부에 일단 올인할 생각이다.

이 글은 도박에 대한 유익한 정보를 주진 못하지만,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도박으로 성공을 노리는 일확천금은 거의 불가능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주색잡기 중 하나인 도박을 멀리하라는 것이다. 필자의 글을 읽고 이것 만큼은 얻어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여기까지 읽었다면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가장 먼저 읽고 선착순으로 알려주는 독자 1명은 밥을 꼭 사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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