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서 미국 의대를 다니는 경우는 그렇게 흔하지 않다. 더군다나 요즘 들어서 컴퓨터 공학이나 비즈니스 분야가 순수 돈 버는 목적에 있어서는 의학이랑 비슷해져서 그 방향으로 트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다. 그래서 최근 필자의 머릿속에 떠오른 게 좀 있었다. 미국에 있는 의대를 다니면서 독자들에게 어떤 걸 전해줄 수 있을까? 여기서만 경험할 수 있는 유니크한 점은 뭘까? 전에 썼었던 글들에는 미국 의대 고시인 MCAT을 비롯해 진입 과정을 나름 자세히 적어놨었다. 아쉽게도 의대를 경험하기 전이여서 실제 의대가 어떤지에 대해서는 쓰지 못했었다. 하지만 현재 한학기를 마무리하고 새 학교에서 다시 시작하면서 이제는 어느 정도 말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래서 한번 써보려고 하는데 정보를 얻는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재미 삼아 읽어주면 좋을 것 같다.
일단 의대는 150명이 한학년 평균 학생 수다. 150명보다 적은 학교들도 수두룩하다. 예를 들어서 필자가 대학교를 나왔던 에모리 대학도 의대 학생 수는 한학년에 100명이 안된다. 필자가 지금 다니는 새로운 학교인 University of Texas Medical Branch의 한학년 수는 230명이다. 의대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분명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오 생각보다 괜찮네! 사람도 많으면 친구들도 많이 만들 수 있고 좋지." 많이들 이렇게 생각할 거라고 짐작이 된다.
지극히 틀린 생각이다. 물론 사람이 너무 적어도 문제긴 한데, 차라리 적은 게 많은 것보다 낫다. 이 발언에 대해 바로 설명하겠다. 의대생들의 가장 큰, 가장 의미 있는 업적은 졸업하는 것이 아니다. 졸업을 하고 좋은 residency program에 매칭이 되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이용해 의사로서의 발판을 세우는 건데 만약 같은 학년에 사람이 많으면 어떻게 될까? 1명씩 많아질수록 1명씩 경쟁자가 더 생기는 꼴이다. residency들은 한 의대에서 의사들을 뽑는 게 한정돼 있는데 특히나 성형외과, 피부과, 신경내과 같은 인기가 많은 과들은 자연스럽게 더 경쟁이 쟁쟁해지고 어려워지는 격이다.
필자는 텍사스에 있는 의대를 다니고 있다. 텍사스라는 주는 미국에서도 유일하게 의학 시스템이 따로 있는 주인데 (다른 49주들은 통일된 시스템) 그런 만큼 학생들도 90% 텍사스 거주인으로 채워야한다는 법이 있다. 이로 인해 학생들도 대부분 텍사스에만 살았던 경우가 많고 텍사스 주에서 대학을 나온 게 대다수다. 필자도 물론 중고등학교를 텍사스에서 나왔는데, 에모리 대학을 다니며 애틀랜타에서 살아 본 이상, 텍사스에 대한 경멸감이 어느 정도 생겼다. 그래서인지 필자는 텍사스 문화나 텍사스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데 뭔가 거리감이 있다. 며칠 전에는 필자 의대생들이 동네 핫플이라고 칭한 근처 바를 가봤는데 들어가자마자 컨트리 바 느낌이 확 오면서 바로 술이 땡겼다. 기분이 좋아서 술이 땡기는게 아니라,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못 참을 정도로 개노잼일 거 같아서 바로 술을 몇 잔 들이켜야만 했다.
솔직히 동네 주변 환경에 대해서는 뭐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그럼 의대생들은 어떨까? 일단 의대생들은 대단한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대학마다 상위권에서 놀고 나름 한가닥 하던 양반들이 와서 그런지 공부하는 수준들이 매우 놀랍고 필자도 같은 의대생이지만 뭔가 다르게 느껴지는 사람들이다. 필자가 다니는 의대생 수준이 이런데, NYU나 존 홉킨스 의대 이런 곳들은 어떤 사람들이 다닐까 궁금하다. 최소 아프리카에서 한 6년 살면서 봉사활동만 한 사람들이나 출판한 리서치 논문만 최소 10개 정도는 되는 사람들이지 않을까 싶다. 확실한 건 어떠한 의대를 가도 빡대가리는 없다는 것이다. 의대 진입 과정도 빡센 만큼, 들어오는 사람들도 웬만하면 다 레전드들인 거 같다.
또 한가지 공통점인 거는 한국 사람이 많을 수가 없는 의대 구조라는 것이다. 필자는 서류상 미국인이지만 피는 한국인이다. 뼛속까지 한국인이다. 군문제 아니었으면 미국 시민권은 절대 생각조차 안 했을 사람이다. 그런 만큼 한국인이랑 어울리는 게 좋은 사람인데, 한국인들이 많이 없다. 가장 큰 이유는 미국 의대들이 영주권을 취득한 지원자들만 받는 시스템이어서 이 조건 때문에 포기한 사람들도 많다. 필자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한명도 유학생 비자만 가지고 있어서 아무리 스펙이 괜찮고 공부를 잘했음에도 불구하고 조건 미달이라는 상태 때문에 지원을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한국인들은 적을 수밖에 없고, 게다가 의대들도 diversity quota라는 학생 인종 조건을 채울 때 아시안들 중에서는 인도인들과 중국인들을 훨씬 많이 뽑는다. 냉정하게 말해서 해외 한국인들은 공부 분야만큼은 인도인들과 중국인들에게 한 수 접고 들어가야 한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필자가 다니는 의대에도 인도애들은 한 100명 보이고 중국인들도 한 30명 보이는데, 한국인들은 한두명 밖에 안 보이는 현실이다.
하는 수 없이 그냥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면서 공부를 하는데 의대 공부량은 어마어마하다.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될 거 같다. 그냥 독자가 지금 생각하는 의대생들의 공부량 - 말 그대로 그거다. 밤에 생각 없이 자는 게 재밌어질 정도로 공부량이 레전드다.
이게 주관적일 수도 있는 내용이긴 한데 필자가 느낀 거만 딱 말하자면, 의대는 너무 노잼이라는 것이다. 근데 주변 환경 이슈가 크게 적용되고, 엄밀히 따지면 의대인데 재미를 찾는 거도 뭔가 웃기기도 해서 뭐라 말할 수도 없는 처지다. 만약 이걸 읽고 있는 사람 중 의대 지원자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공부 뼈 빠지게 해서 정말 좋은 의대를 가길 바란다. 좋은 의대들은 대부분 큰 도시에 위치되어있으니 공부 열심히 해서 의대만큼은 도시에 있는 곳을 가길 바란다. 시골에 있는 의대에 가면 그거 만큼 교도소 같은 교도소가 없으니 수감 생활을 피하고 싶으면 MCAT을 조금 더 잘 보고, 조금이라도 이력서를 더 좋게 만들기를 추천한다.
그래서 미국 의대는 어떻냐? 나름 감사하게 여기고 그냥 다녀야 하는 게 맞는데, 필자도 인간인지라 계속 불편한 점이 더 보이고 좋은 점을 골라내기가 어려운 듯하다. 그리고 만약 의대 경험이 좋기만 했다면, 굳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확실한 건 더 좋은 의대를 갔다면, 지금 느끼는 점들이 많이는 해결됐을 거다. NYU처럼 맨해튼 한중심에 있는 곳을 다니고 있다면 공부하는 게 아무리 쉣이어도 주변 환경에서 힐링 요소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도 그럼 바닷가를 보면 되지 않느냐라고 질문할 수 있는데 필자는 텍사스 바닷가를 별로 안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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