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글을 꾸준히 읽었던 독자라면 이미 캐치했을 부분이긴 하다. 필자는 래퍼 E Sens(이센스)의 엄청난 팬이다. 인스타 계정에도 여러 번 이센스를 언급했었고, "굉장히 주관적인 국힙 명반 BEST 3" 글에선 이센스의 첫번째 정규 앨범을 BEST 3중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었다. 유튜브에 "흔한 센충이"라는 유명한 이센스 팬 채널 운영자 다음으로 버금가는 팬은 필자 자신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어렸을 적, 랩이랑 힙합을 처음 들었을때는 이센스를 딱히 좋아하진 않았었다. 솔직히 잘 몰랐다고 보는 게 맞는 거 같다. 슈프림팀에서 쌈디랑 듀오로 활동하는 래퍼로만 알았었고, 공중파 방송에 패널이나 게스트로 가끔 나오는 연예인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 당시에는 대부분 사람들처럼 잘생긴 래퍼들을 좋아했었다. 지금도 팬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빈지노, 버벌진트, 쌈디, 등등을 포함으로 그냥 잘생겼는데 아이돌만 아닌 래퍼면 다 챙겨 듣곤 했었다. 아이돌 중 유일하게 들었던 래퍼는 지코였었다. TV 프로그램 쇼미 더 머니에서도 매 시즌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아이돌 래퍼들을 향한 반감에 대해 조명을 비추듯이, 필자도 아이돌 래퍼들한테는 리스펙이 부족했었다. 아이돌 래퍼면 흔히 말하는 그 "리얼 힙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저격하는 건 아니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지금도 아이돌에 대한 생각은 그리 변하지 않았다.
어쨌든 처음으로 필자가 이센스를 제대로 알게 된 계기는 한국 힙합씬을 뒤엎은 컨트롤 디스전 사태다. 2013년에 스윙스가 먼저 칼을 꺼내 들면서 Big Sean과 Kendrick Lamar의 "Control"이라는 비트로 많은 한국 래퍼들을 저격했었는데, 이것에 힘입어 저격을 받지 않았었던 래퍼들도 참전을 한 케이스로 유명하다. 이센스도 여기서 그 똑같은 비트로 자신이 소속돼있던 회사 아메바컬처를 비롯해 소속사 대표인 다이나믹 듀오의 래퍼인 개코를 디스 했는데, 이것이 큰 파장을 일으키며 사람들의 엄청난 관심을 끌어모으게 된다. 대충 결론만 말하자면, 이센스는 자신이 스캔들에 휩싸이자 개코가 회사를 이용해 자신의 돈을 빼돌리고 배신을 때렸다고 선 디스를 했고, 여기서 개코는 이센스한테 대마초랑 마약을 복용하는 약쟁이라고 맞디스를 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나무위키에도 나와있는 오늘날까지도 회자되는 이센스의 유명한 문장, "이거 듣고 나면 대답해 개코"다. 뭐 별거 아닌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 문장이지만, 많은 뜻이 담아져 있는 이센스의 소신 있는 벌스다. 2013년은 다이나믹 듀오가 한창 잘 나가는 전성기 시기였다. 개코는 당시 국힙 원탑 자리도 넘보는 위치에 있었고, 심지어 본인이 "170에 60kg도 안되지만 국보 1호급 MC"라고 할 정도로 명실상부한 래퍼이자 방송에도 자주 나오는 연예인이었다. 당연히 팬층은 두터웠고 서포터들도 많았는데, 이센스는 이런 것 아랑치 않고 본인이 느낀 빡친 감정과 받은 부당한 대우를 소신 있게 표현한 것이 큰 관점 포인트다. 특히나 유교사상을 필이 중요시하는 대한민국에선 어느 분야 후배가 하극상으로 선배를 까고 디스 하는 것은 지극히 드문 일이니, 이것 또한 논란이 커지는 데에 한몫을 했었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이것에 대해 꽤 멋있다고 생각했었다. 이센스 말고도 필자가 존경하는 인물들 중엔 축구선수 기성용이 있는데, 이센스와 비슷한 점은 주변 사람들이 어떤 참견을 하든 자기가 해야 할 말은 꼭 한다는 것이다. 2007년, 한국 축구 대표팀이 우즈베키스탄과 붙은 베이징올림픽 최종 예선전이 0대 0 졸전으로 끝나자 팬들은 SNS를 이용해 축구선수들에게 욕설과 비난을 퍼붓는데, 당시 대표팀에서 뛰었던 기성용은 "답답하면 니들이 뛰던가"라고 싸이월드에다가 글을 남긴다. 이 것에 대해 당연히 많은 이들은 팬들을 기만했고 무시한 발언이다라고 더 많은 비난을 했지만, 필자는 기성용에 행동에 대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온 힘을 다해 열심히 뛰었는데 국민들에게 돌아오는 건 욕과 비난이라면, 그 누구도 대표팀 일원으로 뛰고 싶지 않을 것이다. 자기 자신이 본인을 변호하거나 옹호해야 한다면 후한이 두려울지라도 소신 있게 할 말을 하는 것이 기성용과 이센스의 공통점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면을 필자는 공감하고 더더욱 본받고 싶다. 소위 말해 "ㅈ까"라는 마인드셋. 뭔가 남자다우면서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마음가짐인 것 같다.
본론으로 돌아오겠다. 그래서 디스전 이후, 이센스라는 래퍼를 알게 되면서 작업물을 찾아 듣게 되는데 굉장히 좋은 첫인상을 남겼었다. 마치 Jazzyfact 1집을 처음 들었을 때 느낌이랄까, 약간 대중이 잘 모르는 보석을 찾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남들이 잘 모르는 본인의 취향저격인 아티스트를 찾아서 들으면 더 좋게 들리는 것처럼 필자도 이센스를 슈프림팀 멤버가 아닌 솔로 래퍼로 고등학교 시절 처음 들을 때 딱 그 느낌이었다. 물론 이센스를 아는 사람은 늘 있었지만, 그 당시 솔직히 길거리에서 100명을 물어본다면 이센스를 안다는 사람은 절반도 안됬을 것이다. 그래서 이때부터 이센스의 랩을 많이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시기가 이센스가 대마초 사건으로 감옥에서 복역을 하고 있을 때였다. 정규 앨범 The Anecdote를 발매한 지 1년이 안됬을 적으로 기억하는데, 필자에겐 한창 부모님이랑 싸우던 학창 시기였었다. 학교 생활이 너무 힘들고, 지루하고 공부만 반복되는 일상에 삶에 대한 비관적인 생각만 들고, 별다른 행복이 없던 시절, 이센스의 정규 앨범은 뭔가 필자의 당시 상태를 대변하는 음악 같았다. 곡들 하나하나가 마음속에 와닿아서 그런지 듣기가 좋았다. 물론 다른 점을 꼽자면, 이센스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아버지와 지내던 시간을 회상하곤 하는데, 그 부분은 전혀 공감되지 않았다. 그런 부분은 그냥 생략하고 들었다. 당연히 이 앨범 외에 다른 곡들도 다 마음에 들었고, 담백했다. 필자의 인생 곡 중 하나인 "비행"도 이때 찾았는데, 처음 들었을 때부터 가사 하나하나 빼먹지 않고 귀에 박혔던 걸 기억한다. 필자가 보는 이센스의 가장 큰 장점은 가사인데, 개인적으로는 대중이 인정하는 에픽하이의 래퍼 타블로보다도 더 깊고 뼈 있는 가사를 쓰는 리릭시스트라고 생각한다. 주관적이다라고 볼 수도 있지만, 유튜브가 이 주장을 뒷받침해준다. 잘 찾아보면 이센스의 곡들은 시인들이나 평론가들이 분석하고 있는 영상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가사가 인상 깊고 유니크하다.
음악성으로 국힙 원탑 자리에 오른 것은 분명하지만, 사생활도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복역을 마치고 이센스가 사회로 돌아왔을때, 아직은 많은 이들이 마약 혐의 때문에 안 좋은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나 대마초에 대해 예민한 한국 사회인데 이센스를 좋게 볼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시선을 뿌리치고 이센스는 다시 음악도 하고 정규 앨범 2집인 이방인(The Stranger)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믹스테이프도 발매를 한다. 달라진 모습은 그래도 확실했다. 일단 예전에 공중파 방송에서 보던 모습은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된다. 한동안은 인스타로 술방 라이브나 스토리로 활동하면서 생존 신고식으로 업데이트를 남기곤 했었는데, 그것마저도 그만두게 된다. 그렇다고 가수 김동률처럼 화면에 아예 안 나오는 건 아니다. 유튜브에서는 간간히 모습을 드러내기는 한다. 이런 "반 신비주의, 반 예능" 이미지가 뭔가 가식적이지 않으면서 솔직한 인식을 사람들에게 남긴 것 같다. 롤 같이하는 친근한 동네형 같으면서도 아티스트로서는 존중받는 것이 사람다운 모습처럼 보였다. 예전에 대마초 사건으로 마약 혐의가 있었던 건 분명히 잘못됐고, 쉴드 칠 의향은 없지만 그래도 그 이후로 사적인 사건사고나 스캔들 하나 없었던 것 보면 어느 정도 국힙 원탑 자리에 무게를 잘 짊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보면 발목을 잡힐 수도 있던 일들이었지만, 그런 걸 넘어서서 음악을 포기하지 않고 팬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그런 모습이 정말 존경스럽고 본받아야 할 부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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